평면의 구성 조경休林漫筆

평면 가득 널어 놓는 것과 수납 공간에 자리를 차지 하는 것의 차이는 무얼까. 평면에 잔뜩 펼쳐 놓고 나서 펼쳐진 선을 지우는 일, 남겨 두어 3차원으로 변하여 발 디딜 틈도 없도록 콩나물 기르듯 물을 붓고 있는 일, 뭐 그런 차이일 것이다. 발 디딜 틈이 없이 가득 찬다는 것은 분명 부유한 일이다. 없어서 텅 비어 있는 곤혹스러움은 여행에서나 느끼는 별미일 것이다. 일상을 공유하는 곳에서 평면에 선 하나 긋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글쎄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공간으로 집어넣고 그때부터 잊고 만다. 그래도 빈 자리는 계속 꿈틀대며 자리를 채우고 있다. 빈 공간을 채워 나가는 증식의 순간을 놓친다. 비워야 한다고 하면서 자꾸 채워진다. 정신을 바로 세워 긴장하지 않는다.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 풀어진다. 어느새 넉넉한 마음만큼 공간은 각종 선들이 그려진다. 발디딜 곳을 확인하는 동안 편안함은 긴장으로 바뀌고 만다. 공간을 비우고 채우는 것이 내 몸과 영혼의 내적 순환을 닮았다. 오랜만에 2015년에 제다한 구증구포 녹차를 우린다. 배릿하다. 한승원은 그의 소설마다 햇녹차의 음미를 갓난아기의 배냇냄새 같은 비릿한 향이라고 표현한다. 배릿하고 배냇내가 난다.
평면은 비어 있다. 평면은 채워지길 기다리는 태생적 욕구를 지녔다. 평면에 채워짐이란 또 다른 평면을 향한 목마름이다. 가득 채춰진다는 말을 경계한다. 숫자로 제시할 수도 없다. 무한함 앞에 숫자와 비율은 산수이고 수학의 논리일 뿐 존재론적 자아와는 동떨어진다. 얼마든지 채우라 한다. 평면은 대상을 선택하지 않는다. 에초에 분별심 없이 태어났다. 평면에게 선호란 없다. 개념과 이념의 싹수도 없다. 종자가 없으니 발아할 토양도 소용없다. 무한한 공간마다 평면으로 치면 그만이다. 내가 거기 있으니 비로소 평면인 것이다. 선언조차 헛일이다. 흔적이 있어 자취가 남을 뿐 긋거나 세우는 모든 행위와 동일시된다. 가끔 투정처럼 가이아의 횡포로 평면을 다시 구성할 수도 있다. 평면의 확장성은 빈자리를 찾아 가는 소극적인 행태를 넘어선다. 존재 자체로 자로 잴 수 없는 우주적 실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