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숨 돌리고 조경休林漫筆

내내 정리하고 또 흐트려 놓는다. 그 자리라는게 주어짐이 아니라 등장과 퇴장의 잠깐 사이에 놓였다. 개미굴에 들락대는 일개미와 다를바 없다. 내 것이라고 주어짐이 우스운 까닭이다. 선호라는 게 추구하는 대상에 달려 있겠지만 결국 손 타는 국면과 상황이 그이의 진면목으로 작용할 게다.

입으로는 세상의 부조리에 진절머리 치듯 차고 명징하여 우러러보는데 제 자식 자기 손 타는 행위에 대하여는 관대하다. 입과 스스로의 업이 비틀려 있다. 그러니 갓 쓴 양복이고 칡인지 등인지 후광이 엷다. 절로 믿음이 가다 되돌아 온다. 바라보자니 면목이 없어진다.

해서 흐트려 놓고 끄집어 낸다. 그대로 자리 보전하게 둘 수 없으니 흔들어 섞어서 고른다. 옥석을 가리자는 게 아니라 욕심을 어떻게 부렸는지 되짚어 찾아내는 일이다. 왜 그랬을까. 그때와 지금은 어찌 다를까. 달라진 게 없는 것인가. 닳고 곪고 진물나는 곳은 없었는가.

해서 버릴 것과 지닐 것의 구별이 바로 서는가를 뚜렷하게 직시한다. 정리하는 하루를 예비하여 차를 우린다. 흐트려져 난장인 세상 한 가운데를 우직하게 중심 잃지 마라고 보온병 3개에 우린 차를 담는다. 어질러 놓고 모양내서 차 마시겠는가. 차맛이 달라도 몌마른 입안을 헹구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이 구석 저 구석, 이웃과 저웃이 모두 엉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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